[TFWA Cannes] AI·모빌리티가 바꾸는 공항…트래블 리테일, '여행 플랫폼'으로 진화
공항 리테일의 경쟁 무대가 터미널 내부에서 여행객의 전체 이동 과정으로 넓어지고 있다. 인공지능(AI)과 디지털 신원 확인, 새로운 모빌리티 서비스가 확산하면서 공항과 트래블 리테일 사업자도 ‘매장에 들어온 승객에게 무엇을 팔 것인가’보다 ‘여행 과정에서 언제, 어떻게 소비자와 연결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는 분석이다.
올리버 와이먼 (Oliver Wyman)의 매니징 파트너 겸 글로벌 산업부문 대표 질 루콜 (Gilles Roucolle)은 프랑스 칸에서 열린 ‘TFWA 월드 엑시비션 & 컨퍼런스 2026 (TFWA World Exhibition & Conference 2026)’에서 기술 혁신과 지속가능성, 여행객의 기대 변화가 공항과 교통 허브의 역할을 빠르게 바꾸고 있다고 설명했다.
루콜이 제시한 변화의 핵심은 공항을 단순한 출발·도착 시설이 아니라 하나의 ‘연결된 여행 플랫폼’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과거 공항의 역할이 승객과 항공편을 효율적으로 연결하는 데 집중됐다면 앞으로는 공항을 오가는 교통수단부터 보안검색, 출입국, 탑승, 쇼핑, 식음료, 목적지 이동까지 전체 여행 경험이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변화는 트래블 리테일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소비자가 브랜드를 만나는 시점이 더 이상 면세점이나 매장 앞에 도착한 순간으로 제한되지 않기 때문이다. 여행 전 스마트폰으로 상품을 검색하고 예약하거나, 공항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상품과 프로모션을 확인하고, 여행 이후에도 디지털 채널을 통해 브랜드와 관계를 이어가는 형태로 소비 접점이 확대되고 있다.
AI는 이러한 변화를 가속하는 핵심 기술로 꼽힌다. AI를 활용하면 여행 일정과 소비자 선호 등을 바탕으로 보다 적절한 상품과 서비스를 제안할 수 있다. 여행 전에 상품을 검색하거나 사전 주문하고 공항에서는 빠르게 상품을 수령하는 방식도 더욱 확대될 수 있다.
생체인식과 디지털 신원 확인 기술 역시 공항 이용 경험을 바꾸고 있다. 여권과 탑승권을 여러 차례 확인해야 하는 과정을 줄여 승객의 이동을 보다 원활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보안검색이나 출입국 과정에서 절약된 시간은 여행객이 공항 내부에서 활용할 수 있는 시간을 늘리는 효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러나 공항에서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난다고 소비가 자동으로 증가하는 것은 아니다. 루콜은 스마트 모빌리티와 기술 발전이 승객에게 더 많은 여유 시간을 제공할 수 있지만 트래블 리테일 사업자는 결국 소비자가 실제 구매에 나설 이유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트래블 리테일 산업이 주목하고 있는 ‘전환율’ 문제와도 연결된다. 공항 이용객이 증가한다고 모든 승객이 쇼핑객이 되는 것은 아니다. 기술을 통해 이동 과정의 불편과 대기 시간을 줄이는 것과 실제 소비를 만들어내는 것은 서로 다른 문제다.
따라서 앞으로 트래블 리테일의 경쟁력은 ‘얼마나 빠르고 편리한 공항인가’를 넘어 기술을 통해 확보한 여행객의 시간을 얼마나 가치 있는 경험으로 전환할 수 있는가에 달릴 가능성이 크다.
개인화도 중요한 변화 가운데 하나다. 여행 목적과 항공편, 출발 시간, 소비 이력 등에 따라 여행객이 필요로 하는 상품과 서비스는 달라질 수 있다.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면 모든 승객에게 동일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각각의 상황과 관심사에 맞는 상품과 서비스를 제안할 수 있다.
다만 개인화가 지나치게 상업적인 경험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도록 하는 것도 과제다. 여행객이 원하는 것은 광고가 끊임없이 따라오는 경험이 아니라 필요한 순간에 유용한 정보와 서비스를 제공받는 경험에 가깝다. 데이터 활용과 편의성, 개인정보 보호 사이의 균형이 중요해지는 이유다.
그리고 루콜은 트래블 리테일 사업자 역시 기존의 매장 중심 사고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전통적인 공항 리테일은 승객이 매장 앞을 지나갈 때 상품을 노출하고 구매를 유도하는 방식에 크게 의존했다. 그러나 스마트폰과 AI, 디지털 플랫폼이 여행 과정에 깊숙이 들어오면서 소비자와 만날 수 있는 시간과 장소가 크게 확대되고 있다.
여행 전에는 온라인에서 상품과 브랜드를 발견하도록 하고, 공항에서는 실제 제품을 체험하거나 구매하도록 하며, 여행 이후에도 디지털 서비스를 통해 관계를 이어가는 방식이 가능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공항 자체의 역할도 달라지고 있다. 공항을 하나의 독립된 시설이 아니라 철도와 버스, 자동차, 도심 교통 등 다양한 이동수단과 연결된 모빌리티 생태계의 일부로 바라보는 시각이 확대되고 있다.
이에 따라 트래블 리테일 역시 터미널 내부에서만 사업 기회를 찾는 방식에서 벗어나 여행객이 공항으로 이동하는 과정부터 공항을 떠난 이후까지 소비 접점을 확장할 수 있게 된다.
지속가능성 역시 이러한 변화의 중요한 축이다. 공항과 교통 사업자가 탄소배출 감축과 친환경 이동수단 확대에 나서면서 공항 접근 방식과 교통 인프라도 변화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공항의 공간 구성과 이용 패턴, 트래블 리테일의 고객 동선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대중교통과 철도, 전기차 등 다양한 이동수단이 공항과 더욱 긴밀하게 연결되면 여행객이 공항에 도착하는 시간과 이동 방식도 달라질 수 있다. 트래블 리테일 사업자에게는 새로운 소비 접점이 생기는 동시에 기존 매장의 역할을 다시 설계해야 하는 과제가 주어지는 셈이다.
루콜이 제시한 미래의 트래블 리테일은 단순히 ‘더 많은 매장을 만드는 산업’과는 거리가 있다.
핵심은 여행객의 이동 과정에서 발생하는 시간과 데이터를 활용해 소비자가 필요로 하는 상품과 서비스를 적절한 순간에 연결하는 것이다. AI는 소비자의 선택을 돕고 디지털 기술은 여행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편과 마찰을 줄인다. 공항 역시 단순한 쇼핑 공간을 넘어 교통과 쇼핑, 서비스, 디지털 경험을 연결하는 플랫폼으로 변화할 수 있다.
결국 여행객이 시간을 쓰고 지갑을 열도록 만드는 것은 상품의 매력과 경험의 가치다. 기술이 여행객에게 시간을 돌려준다면 트래블 리테일 사업자는 그 시간을 어떻게 의미 있는 소비 경험으로 바꿀 것인지 답해야 하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