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개인화를 가속할수록 옥외광고가 차지하는 ‘현실 공간’의 가치는 커진다.
AI와 데이터 기술을 기반으로 한 초개인화 마케팅이 확산될수록, 역설적으로 거리와 광장, 공항, 쇼핑몰, 경기장처럼 많은 사람이 함께 머물고 이동하는 ‘현실 공간’의 가치가 더 커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덴츠 (dentsu)는 지난 2026년 칸 라이언즈 국제 크리에이티비티 페스티벌에서 진행한 ‘더 빅 Q (The Big Q)’ 프로그램을 통해 초개인화 시대의 브랜드 전략과 옥외광고의 역할을 집중적으로 다뤘다. 이번 대담에는 빌럽스 (Billups)의 아시아태평양 최고경영자 벤 밀른 (Ben Milne)과 최고전략책임자 랑가 소마나탄 (Ranga Somanathan)이 참석했다.
대담의 핵심 질문은 분명했다. 소비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서로 다른 메시지를 전달하는 개인화가 계속 확대되는 상황에서, 오히려 여러 사람이 같은 광고를 함께 보고 경험하는 거리와 공항, 쇼핑몰 같은 현실 공간의 가치가 더 커질 수 있느냐는 것이다.
소마나탄은 개인화가 효과를 내려면 그보다 먼저 소비자가 해당 브랜드를 알고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소비자가 전혀 모르는 브랜드가 갑자기 자신을 잘 아는 것처럼 개인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면 오히려 불편함을 줄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브랜드가 먼저 많은 사람을 대상으로 인지도와 친숙도, 호감, 신뢰를 쌓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관계는 소비자 한 명에게만 말을 거는 방식보다는 여러 사람이 동시에 브랜드를 보고 경험하면서 형성될 가능성이 높다. 이후 개인화가 더해질 때 소비자에게 더욱 의미 있는 메시지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것이다.
27년 동안 옥외광고 분야에서 활동해온 밀른도 거리와 공항, 쇼핑몰 등 사람들이 함께 이용하는 현실 공간의 가치가 지속적으로 높아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사람들이 집 밖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상업시설과 복합공간, 공원, 교통시설 등 다양한 공간이 일상에서 더욱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브랜드 입장에서도 이런 장소는 소비자들이 동일한 메시지를 함께 보고 경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밀른은 이를 사람들이 회사나 일상에서 모여 같은 이야기를 나누는 ‘워터쿨러’에 비유했다. 옥외광고는 여러 사람이 같은 광고를 본 뒤 서로 이야기를 나누게 만들 수 있는 사회적 접점이라는 의미다.
소비자마다 서로 다른 광고를 접하는 초개인화 환경에서는 이러한 역할이 더욱 중요해질 수 있다. 브랜드가 소비자마다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보다, 현실 공간에서 공통된 브랜드 이미지와 메시지를 보여줘야 사람들이 해당 브랜드를 같은 기준으로 이해하고 이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디지털 환경에서의 ‘주의력’과 현실 세계에서의 ‘주의력’에도 차이가 있다고 지적했다. 밀른은 사람들이 거리를 걷거나 공항을 이동할 때 차량과 다른 보행자를 살피고, 목적지를 찾고, 주변 상황을 계속 확인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주변 환경에 주의를 기울인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디지털 환경에서는 이용자들이 휴대전화 화면을 빠르게 넘기거나 여러 콘텐츠를 동시에 소비하는 경우가 많다. 이에 따라 거리와 공항, 쇼핑몰 등에서 옥외광고가 확보하는 소비자의 주의는 디지털 화면에서 얻는 주의와 성격이 다를 수 있다는 주장이다.
소마나탄은 칸 라이언즈 현장을 사례로 들었다. 개인화를 강조하는 수많은 기술 기업들조차 행사장에서는 개인별 디지털 메시지보다 옥외광고와 같은 대형 미디어를 통해 다수의 사람에게 동시에 브랜드를 알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사람들이 함께 있는 장소에서 전달되는 광고가 눈에 띄기 쉽고 브랜드에 대한 친숙함을 높일 수 있으며, 잘 만들어진 옥외광고의 경우 하나의 볼거리나 콘텐츠처럼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옥외광고와 소셜미디어의 연결도 중요한 변화로 꼽았다. 소셜미디어 인플루언서들이 대형 옥외광고 앞에서 사진이나 영상을 촬영한 뒤 이를 다시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올리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현실 공간에 설치된 옥외광고가 온라인 콘텐츠를 만들어내고, 다시 디지털 공간으로 확산되는 구조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서로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캠페인 안에서 서로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방식이다.
초개인화가 지나치게 확대될 경우 브랜드가 소비자 사이에서 공유되는 힘, 즉 ‘사회적 통화(Social Currency)’를 잃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밀른은 슈퍼볼 광고나 뉴욕타임스 1면 광고, 런던 피카딜리 서커스, 뉴욕 타임스스퀘어의 대형 옥외광고처럼 수많은 사람이 동일한 콘텐츠를 접하는 경험이 사람들 사이의 대화를 만들어낸다고 설명했다.
누군가 “그 광고 봤어?”라고 물었을 때 상대방도 같은 광고를 봤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어진다. 그러나 모든 소비자가 서로 다른 버전의 광고만 보게 된다면 이러한 공통 경험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소마나탄은 이를 나이키 (Nike)의 사례로 설명했다. 만약 모든 소비자가 각자 다른 형태의 나이키 광고와 브랜드 메시지만 접한다면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인식하는 나이키의 이미지가 약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브랜드가 소비자마다 지나치게 다른 모습을 보여주면 사람들 사이에서 공유되는 브랜드의 의미가 줄어들고, 결국 브랜드가 문화적 상징보다 제품 가격이나 기능을 중심으로 선택되는 단순한 거래 대상이 될 가능성도 있다는 설명이다.
이 때문에 두 사람은 ‘개인화(Personalization)’보다 ‘관련성(Relevance)’에 다시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밀른은 옥외광고가 본질적으로 장소와 상황에 맞춰 메시지를 전달하기 좋은 미디어라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비가 내리기 직전이라면 우산이나 날씨와 관련된 광고가 더 눈에 들어올 수 있다. 공항이라면 여행이나 면세, 금융, 통신과 관련된 메시지가 소비자의 현재 상황과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다.
소비자 개인의 이름이나 데이터를 활용하지 않더라도 장소와 시간, 날씨, 이동 상황 등 주변 환경에 맞는 메시지를 보여주면 충분히 높은 관련성을 만들 수 있다는 의미다. 즉 모든 소비자에게 서로 다른 광고를 보여주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같은 장소에 있는 사람들이 처한 상황과 맥락에 맞는 광고를 보여주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옥외광고의 제한된 광고 공간과 짧은 노출 시간 역시 약점이 아니라 창의성을 높이는 조건으로 평가됐다.
소마나탄은 거리에서 몇 초 안에 이해하기 어려운 광고라면 캠페인의 핵심 메시지 자체가 충분히 정리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옥외광고를 먼저 고려해 캠페인을 기획하면 광고주와 크리에이티브 팀이 브랜드 메시지를 단순하고 명확하게 정리해야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핵심 아이디어는 이후 디지털과 소셜미디어 등 다른 매체로 확장하기도 쉽다는 설명이다.
밀른 역시 옥외광고가 오래전부터 광고 크리에이터들이 선호해온 대표적인 ‘크리에이티브 캔버스’라고 평가했다. 옥외광고는 제한된 공간 안에서 짧은 시간에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 글자를 줄이고 이미지를 단순하게 만들며 로고와 메시지의 위치까지 세밀하게 고민해야 한다. 이러한 제약이 오히려 강력하고 기억하기 쉬운 광고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광고 효과 측정 역시 단순한 효율성 중심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밀른은 모든 광고 캠페인을 하나의 지표로 평가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제품 판매를 목표로 하는 캠페인과 매장 방문을 유도하는 캠페인, 브랜드 인식을 바꾸기 위한 캠페인은 목적이 다르기 때문에 평가 방법도 달라야 한다는 것이다.
소마나탄은 특히 광고 산업이 CPM이나 CPA 등 중·하위 퍼널의 효율성 지표에 지나치게 집중하면서, 소비자가 실제 구매를 결정하기 이전에 브랜드가 만들어야 할 인지도와 신뢰의 가치를 충분히 평가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소비자가 당장 제품을 구매하지 않더라도 평소 브랜드에 대한 친숙함과 신뢰를 쌓아두면 실제 구매 시점에서 선택 가능성이 높아지고 고객 획득 비용을 낮추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따라서 마지막 클릭이나 최종 구매만으로 광고 효과를 판단하기보다 인지도, 신뢰, 고려, 구매로 이어지는 전체 소비자 여정을 함께 평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술 발전이 옥외광고에 가져온 가장 큰 변화로는 ‘측정 가능성’도 꼽혔다.
소마나탄은 데이터와 기술을 활용하면서 과거보다 옥외광고 캠페인이 소비자의 행동과 실제 비즈니스 성과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확인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옥외광고가 단순히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노출됐는지를 보여주는 미디어에서 벗어나, 캠페인이 어떤 행동과 결과를 만들어냈는지 측정하는 미디어로 진화하고 있다는 의미다.
그러나 기술이 대체할 수 없는 영역에 대한 두 사람의 답은 분명했다. 인간의 창의성이다. 두 사람이 바라보는 미래 브랜드의 핵심 역시 현실 세계에서 소비자와 어떤 경험을 함께 만들어내느냐에 맞춰져 있다.
AI가 소비자마다 서로 다른 광고와 콘텐츠를 만들어낼 수 있는 시대가 열리고 있지만, 모든 브랜드 경험이 개인화될수록 많은 사람이 동시에 같은 광고를 보고 이야기하는 경험은 오히려 희소해지고 있다.
이런 변화는 옥외광고의 역할이 단순히 ‘많은 사람에게 광고를 보여주는 매체’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거리와 공항, 쇼핑몰, 경기장 등 사람들이 실제로 만나고 이동하는 공간에서 하나의 브랜드 메시지를 함께 경험하게 하고, 그 경험을 사람들 사이의 대화와 소셜미디어로 확장하는 것이 초개인화 시대 옥외광고의 새로운 경쟁력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