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히드로공항, 연간 9,500만 명 시대 대비… 면세점·명품관·식음료 전면 재편
영국 런던 히드로공항 (Heathrow Airport)이 국제 항공시장의 불확실성 속에서도 터미널 상업시설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면세점과 명품 매장을 재정비하는 동시에 식음료 시설의 운영 효율을 높여 제한된 공항 공간에서 더 많은 소비 수요를 확보하겠다는 전략이다.
글로벌 트래블 리테일 전문매체 무디 데이빗 리포트(The Moodie Davitt Report)는 최근 프랑스 칸에서 열린 세계면세품박람회(TFWA World Exhibition)에서 프레이저 브라운(Fraser Brown) 히드로공항 리테일 디렉터와 진행한 인터뷰를 통해 공항의 상업시설 개발 계획과 주요 사업 전략을 소개했다.
히드로공항은 올해 연간 이용객을 약 8,360만 명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는 지난해보다 약 1% 감소한 수준이다.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불안으로 항공 수요가 위축됐지만, 다른 지역으로 항공편이 재배치되면서 전체 이용객 감소 폭은 제한적일 것으로 예상된다.
공항이 발표한 2026년 6월 투자자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비항공 수익은 전년 대비 5.4%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반면, 리테일 매출은 대체로 전년 수준에 머물 것으로 전망된다. 비항공 수익은 항공기 운항과 직접 관련된 수익을 제외한 상업시설 임대, 주차, 광고 등에서 발생하는 수익을 의미한다.
히드로공항은 새로운 성장 기회를 확보하기 위해 기존 터미널의 상업시설을 재구성하고 있다. 특히 제4터미널(T4)은 향후 1년간 대대적인 변화를 추진한다.
공항은 글로벌 트래블 리테일 사업자인 아볼타(Avolta) 및 주요 브랜드와 협력해 T4의 핵심 면세점을 전면 재정비할 예정이다. 보안검색 설비 교체에 따른 공간 재배치를 활용해 매장 구성과 고객 동선을 함께 개선한다는 계획이다.
T4는 히드로공항 터미널 가운데 이용객 규모가 가장 작지만 카타르항공, 사우디아항공, 쿠웨이트항공, 에티하드항공과 베트남·말레이시아 항공사 등이 취항하고 있어 국제 여행객의 소비 잠재력이 높은 곳으로 평가된다.
매장과 주요 시설이 동일한 층에 배치돼 있어 승객이 이동하면서 쇼핑하기 편리하다는 장점도 있다. 공항 측은 이러한 특성을 활용해 새로운 브랜드를 유치하고 영국 특산품과 선물 상품군을 강화할 방침이다.
제2터미널(T2)에서는 환승 서비스 데스크를 이전해 신규 리테일 매장 3개를 추가로 확보한다. 영국 고급 식품 브랜드 포트넘 앤 메이슨(Fortnum & Mason)도 11월 초 T2 출국장에 다시 입점할 예정이다. 이 브랜드는 제3터미널(T3)의 식음료 공간에도 매장을 확대하며, 제5터미널(T5)에서는 기존 협력 관계를 연장했다.
명품 쇼핑시설도 중요한 투자 대상이다. 히드로공항은 최근 2년간 추진해 온 T5 명품 매장 재편을 마무리했다.
이 과정에서 제냐(Zegna)가 히드로공항에 처음 입점했고, 영국의 전통 가죽제품 브랜드 스마이슨(Smythson)이 복귀했다. 디올(Dior)과 에르메스(Hermès)는 매장 규모를 확대했으며, 프라다(Prada)와 보테가 베네타(Bottega Veneta)도 매장을 재구성했다.
다만 영국의 면세 쇼핑 제도는 명품 판매 확대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브렉시트 이후 해외 방문객 대상 면세 쇼핑 혜택이 폐지되면서 영국 공항의 명품 가격 경쟁력이 약화됐기 때문이다.
브라운 디렉터는 영국 공항에서 판매되는 일부 명품이 해외 공항보다 비싼 현실을 지적하며, 세제 문제로 매출이 감소했음에도 글로벌 명품 브랜드들이 히드로공항에 대한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식음료 사업은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 히드로공항은 승객들이 식당에서 보내는 시간과 소비 규모에 주목해 식음료 시설을 주요 상업 수익원으로 육성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T5 도착장에 새롭게 문을 연 프레타망제(Pret A Manger) 매장이다. 공항은 이 매장에 일반 여행객뿐 아니라 도착 승객을 기다리는 운전기사 등 다양한 이용객의 행동 특성을 반영했다. 일부 좌석은 도착 승객이 나오는 방향을 바라보도록 배치해 고객을 기다리면서 식음료를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히드로공항 내 프레타망제 매장은 총 9곳으로 확대됐다. 또한 T3에는 영국 공항 최초로 슬림 치킨스(Slim Chickens)가 입점했고, T5에는 파이브 가이즈(Five Guys) 등 새로운 외식 브랜드가 들어섰다.
공항이 패스트푸드와 간편식 서비스를 강화하는 이유는 제한된 공간에서 더 많은 승객을 수용하기 위해서다. 같은 면적의 매장에서 더 많은 고객에게 신속하게 음식을 제공할 수 있다면 식음료 매출뿐 아니라 승객의 쇼핑 가능 시간도 늘어날 수 있다는 판단이다.
실제로 브라운 디렉터는 슬림 치킨스가 기존 풀서비스 레스토랑보다 동일한 공간에서 더 많은 고객을 응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리테일 매장의 상품 구성을 통합하는 전략도 추진 중이다. T2에 입점한 릴레이(Relay)는 라가르데르 트래블 리테일(Lagardère Travel Retail)이 운영하는 매장으로, 영국 슈퍼마켓 브랜드 웨이트로즈(Waitrose)와 협력해 간편식과 음료, 여행 필수품 등을 한곳에서 판매한다.
공항은 제한된 상업시설 면적을 고려할 때 유사한 상품을 판매하는 매장을 여러 곳 배치하기보다 다양한 상품을 한 매장에서 제공하는 방식이 효율적이라고 보고 있다.
기존 사업자와의 협력도 유지하고 있다. 히드로공항 개항 당시인 1946년부터 영업해 온 WH스미스(WHSmith)는 T3·T4·T5에서 계약을 연장했다. 특히 T5 매장은 세계 최대 규모의 WH스미스 매장으로 운영되고 있다.
히드로공항이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는 증가하는 식음료 이용객을 면세점 고객으로 연결하는 것이다.
브라운 디렉터는 공항 내 식음료 시설을 이용하는 승객 비율이 높아지는 반면, 면세점에서 실제 구매로 이어지는 고객 비율은 정체되거나 감소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예를 들어 공항 레스토랑에서 특정 샴페인이나 위스키를 경험한 고객이 이후 면세점에서 같은 제품을 구매하도록 유도하는 판매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식음료 시설에서의 브랜드 경험을 면세점 구매로 연결하는 교차판매가 아직 충분히 실행되지 않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는 브랜드와 공항 운영사업자, 면세점 사업자 사이의 협력 방식에도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승객의 식음료 이용 경험과 구매 동선을 분석해 매장 간 고객 이동을 유도하는 것이 핵심 과제로 떠오른 셈이다.
히드로공항은 장기적으로 연간 이용객 9,500만 명을 수용하는 운영체계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의 활주로 2개 체제에서 수용 능력을 높이는 방안과 함께 제3활주로 건설을 통한 중장기 확장도 추진하고 있다.
다만 제3활주로 건설을 둘러싼 영국 정부와 지역사회의 입장은 여전히 엇갈리고 있다. 공항 측은 국가 경제성장과 고용 창출 효과를 강조하지만, 소음과 환경 문제에 대한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브라운 디렉터는 국제 정세나 항공 수요 변동을 공항이 직접 통제할 수는 없지만, 상업시설의 운영 방식과 고객 서비스는 개선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히드로공항은 앞으로도 터미널별 이용객 특성에 맞춰 명품과 면세점, 식음료 매장의 구성을 조정할 계획이다. 특히 한정된 면적에서 매장당 고객 수용 능력을 높이고 식음료 이용객의 면세점 구매를 확대하는 데 상업시설 투자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