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광고가 보여준 미디어의 본질…'캠페인 사이즈'보다 중요한 '관심과 신뢰'
“이제는 규모의 게임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얼마나 오랜 시간을 보내느냐다. 우리는 관심과 신뢰를 얻으려 한다. 그것이 고객에게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메일 메트로 (Mail Metro)의 최고수익책임자(CRO) 도미닉 윌리엄스 (Dominic Williams)가 최근 밝힌 이 말은 오늘날 미디어 시장의 변화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클로딘 콜린스 (Claudine Collins)를 최고고객책임자(CCO)로 포함한 새로운 경영진을 출범시키면서, 미디어의 경쟁력을 단순한 도달 규모가 아니라 이용자의 체류 시간과 관심, 신뢰라는 관점에서 다시 정의했다.
광고주에게 미디어는 오래전부터 ‘규모’와 ‘관심’이라는 두 축 사이에서 평가돼 왔다. 한쪽에는 브랜드 인지도를 만들기 위한 대규모 도달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높은 집중도와 신뢰를 바탕으로 한 프리미엄 미디어가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파이낸셜타임스 (Financial Times)다. 신뢰도가 높은 파이낸셜타임스의 독자 1,000명에게 광고를 노출하는 비용은 화장실 문에 붙이는 포스터 광고보다 훨씬 높다. 물론 화장실처럼 이용자가 일정 시간 머무르는 공간은 의외로 높은 광고 주목도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지난 20년간 디지털 미디어가 급격히 성장했지만 한 가지 조건만큼은 변하지 않았다. 사람에게 주어진 하루는 24시간뿐이고, 실제로 미디어를 소비할 수 있는 시간 역시 한정돼 있다는 점이다.
아무리 많은 미디어와 플랫폼이 소비자의 시간을 놓고 경쟁해도 개인이 하루 동안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은 늘어나지 않는다. 끊임없이 스마트폰을 스크롤하는 Z세대든, 오랜 시간 TV를 시청하는 고령층이든 결국 자신의 시간을 어디에 쓸지 선택해야 한다. 물론 규모도 중요하고 관심도 중요하다. 그러나 사람들이 진심으로 좋아하고 실제로 신경 쓰는 주제를 다루는 미디어는 더 강한 힘을 갖는다.
수 언너먼 (Sue Unerman)은 이를 ‘G.A.F.’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Give A Fuck’의 약자로, 소비자가 어떤 콘텐츠나 브랜드를 정말 중요하게 여기고 신경 쓴다는 의미다.
월드컵은 G.A.F. 미디어를 설명하기에 가장 적절한 사례다. 수십억 명의 잠재적 시청자를 가진 월드컵은 대규모 도달과 높은 관심이 동시에 발생하는 대표적인 글로벌 미디어 이벤트다. 미디어 기업 입장에서도 월드컵 기간은 광고 수익을 크게 높일 수 있는 시기다.
하지만 모든 브랜드가 월드컵에 광고를 집행한다고 해서 소비자의 관심을 자동으로 얻는 것은 아니다. 성공한 브랜드는 소비자가 중요하게 여기는 주제에 대해 해당 브랜드 역시 진정성 있게 관심을 갖고 있다는 인상을 만들어낸다. 단순히 브랜드와 축구를 연결하거나 월드컵 이미지를 광고에 활용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소비자에게 실제 의미가 있고 브랜드와 관련성이 있어야 한다.
아이언 브루 (Irn-Bru)의 ‘We’re Made in Scotland from Girders’ 캠페인은 이런 점에서 주목할 만한 사례로 평가된다. 스코틀랜드의 월드컵 본선 진출이라는 분위기와 브랜드 특유의 정체성을 자연스럽게 연결하면서 소비자와의 접점을 만들었다.
마마이트 (Marmite)의 ‘We Mite’ 패키지도 비슷한 맥락이다. 이는 2006년 마스 (Mars)가 선보였던 ‘Believe’ 초콜릿 바를 떠올리게 한다. 당시 마스는 ‘충분히 믿는다면 잉글랜드가 우승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제품에 담았다.
물론 월드컵 기간에는 수많은 브랜드가 뛰어난 광고를 선보였다. 반면 막대한 광고비가 투입됐지만 소비자 기억에 남지 못한 광고 역시 적지 않았다. 중계 방송 사이에 등장하는 광고 몇 편만 살펴봐도 소비자의 관심과 브랜드 메시지가 제대로 연결되지 못한 사례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월드컵을 벗어난 일상적인 미디어 환경에서 G.A.F. 미디어는 어떤 모습일까?
도미닉 윌리엄스가 이끄는 메일 메트로의 미디어 전략 역시 하나의 사례가 될 수 있다. 신문 브랜드들은 오랜 기간 독자들이 관심을 갖는 콘텐츠를 만들며 독자와 관계를 형성해 왔다. 하지만 G.A.F. 콘텐츠는 신문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반드시 봐야 할 TV 프로그램, 대형 영화, 사랑받는 DJ, 영향력 있는 인플루언서 등 다양한 채널에서 소비자의 높은 관심을 만들어내는 콘텐츠가 존재한다.
광고 집행에서 중요한 것은 이처럼 소비자가 적극적으로 관심을 보이는 미디어와, 소비자가 신경 쓸 만한 브랜드 메시지를 서로 연결하는 것이다.
이 개념은 흔히 말하는 ‘목적 지향적 콘텐츠’와는 다르다. 브랜드 메시지 뒤에 반드시 거대한 사회적 목적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도브 (Dove)처럼 브랜드 목적을 통해 사회적 인식과 문화적 규범의 변화를 만들어낸 사례도 있다. 하지만 단순히 소비자가 열정을 보이는 주제를 광고에 활용하는 것 역시 G.A.F. 콘텐츠라고 보기 어렵다.
월드컵 광고에서 볼 수 있듯이 소비자가 좋아하는 축구나 선수를 광고에 등장시키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브랜드와 소비자 사이에 실질적인 의미와 관련성이 만들어져야 한다. 좋은 G.A.F. 브랜드 콘텐츠의 핵심은 결국 ‘의미 있는 메시지’다. 그 의미가 반드시 거창할 필요는 없다. 고객에게 더 나은 가격과 가치를 제공한다는 약속일 수도 있고, 믿을 수 있는 품질과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메시지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경쟁 브랜드와 차별화될 수 있는 이유를 제시하고, 그것이 소비자의 삶과 실제로 연결돼야 한다는 점이다. 관련성이 결국 구매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모든 마케터가 고민해야 할 질문도 여기에 있다.
“수많은 경쟁 브랜드 가운데 소비자가 왜 우리 브랜드를 신경 써야 하는가.”
소비자가 실제로 관심을 가질 만한 브랜드 콘텐츠를 만들 수 있다면 대규모 포스터 옥외광고나 검색광고 같은 도달 중심 미디어도 충분한 성과를 낼 수 있다.
하지만 소비자가 정말 관심을 갖는 미디어와 소비자가 정말 신경 쓸 수 있는 브랜드 메시지가 결합되면 효과는 단순한 도달이나 주목도를 넘어선다.
광고는 지루해서는 안 된다. 도시나 미디어 공간의 배경처럼 흘러가서도 안 된다. 수많은 경쟁 광고 속에 묻혀서도 안 된다. 브랜드가 소비자에게 왜 중요한지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메시지를 소비자가 실제로 관심을 갖고 시간을 보내는 미디어와 공간에서 전달해야 한다.
결국 광고의 경쟁력은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노출됐는지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소비자가 그 메시지를 얼마나 중요하게 받아들이고, 브랜드를 얼마나 자신의 삶과 관련 있는 존재로 인식하느냐가 더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