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 패턴 ‘경험 중심’으로 전환…명품 산업 지형 대전환 시작
글로벌 럭셔리 시장이 경기 둔화와 소비 트렌드 변화에도 불구하고 2025년 안정적인 흐름을 이어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베인앤드컴퍼니(Bain & Company)와 알타감마(Altagamma)가 발표한 ‘2025 글로벌 럭셔리 시장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전 세계 럭셔리 소비는 1조4400억 유로 규모로 전년과 비슷한 수준을 유지할 전망이다. 경제 및 지정학적 위험 요인이 여전함에도 소비 기반이 견조하게 유지되면서 전체 시장은 큰 흔들림 없이 내년까지 완만한 회복 흐름을 이어갈 것으로 분석됐다.
그러나 시장의 겉모습과 달리 내부에서는 구조적 변화가 본격화되고 있다. 소비자들이 고가 제품 소유보다 웰니스, 여행, 미식 등 ‘경험 중심 소비’를 새 지위의 상징으로 받아들이면서 럭셔리 산업 전반의 축이 이동하고 있다는 점이 이번 보고서의 핵심이다. 크루즈, 호스피탈리티, 파인 다이닝 등 경험형 부문이 빠르게 확대되는 반면 고급 자동차 등 전통적 소유 기반 시장은 성장세가 둔화하는 흐름이 뚜렷하다.
개인 명품 시장 역시 팬데믹 이후의 반등이 마무리되고 성숙 단계로 접어들었다. 올해 시장 규모는 3580억 유로로 예상되며 환율 효과를 제외할 경우 전년 대비 사실상 보합세다. 초고가 소비층은 여전히 구매 여력이 크지만, 중간층은 경기 불확실성과 가격 부담으로 지출을 줄이면서 전통 명품 부문 전체의 성장 탄력이 떨어지고 있다. 베인앤드컴퍼니의 클라우디아 다르피지오(Claudia D’Arpizio) 파트너는 “쇼핑 중심의 시대는 끝났고 감정과 경험이 성장을 이끄는 엔진으로 자리 잡았다”며 “품질 중심의 성장과 혁신이 필요한 전환기”라고 평가했다.
세부 카테고리별로는 명암이 더욱 뚜렷하다. 자동차는 가격대 전반에서 판매량이 줄고 있으나 고성능 스포츠 모델만은 선방하고 있고, 요트·프라이빗 제트기는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파인 아트는 정체된 모습이며 고급 와인·주류 시장도 기대에 못 미쳤다. 반면 아시아·중동·휴양지에서는 미식 경험에 대한 수요가 급증해 파인 다이닝이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 사파리·엘리트 스포츠 등 새로운 여행형 럭셔리 경험도 시장의 외연을 넓히는 요인으로 꼽힌다.
가격대별 소비 흐름도 양극화되고 있다. 전체의 40%를 차지하는 하이엔드 시장은 2023년부터 연평균 –1~–3% 수준으로 소폭 감소한 반면, 가성비를 중시하는 소비가 확산되면서 접근 가능한 가격대 브랜드는 개인 명품 시장에서 점유율을 확대하고 있다. 특히 Z세대를 중심으로 ‘합리적 럭셔리’에 대한 선호가 뚜렷해지며 소비 지형이 재편되고 있다.
유통 환경도 변화가 크다. 아울렛 매장은 가치 소비 흐름을 타고 성장하고 있으며, 온라인은 보합세를 유지하고 있다. 반대로 단일 브랜드 매장은 최근 6개월간 약 2만5000㎡가 축소됐고, 미국 백화점은 2024년 이후 매장 면적을 10% 줄였다. 보고서는 감성·몰입·개인화를 중심으로 한 ‘선택과 집중형 플래그십 전략’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지역별로는 성장 편차가 심화되고 있다. 중국은 올해 35% 감소하며 접근 가능한 브랜드와 경험형 소비로 무게중심이 바뀌고 있고, 일본은 지난해 강세 이후 관광 수요 둔화로 성장세가 주춤하다. 유럽도 강한 유로화와 지정학 리스크로 13% 감소할 전망이다. 반면 미국을 중심으로 한 미주는 02%의 완만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으며 중동은 올해 46% 성장으로 가장 강한 실적이 기대된다.
신흥 지역의 약진도 주목할 만하다. 중동·라틴아메리카·동남아·인도·아프리카의 럭셔리 시장 규모는 올해 약 450억 유로로 중국 본토와 비슷한 수준에 도달했다. 동남아에서는 젊은 소비층이 시장을 이끌고 인도는 중산층 확대가 시장 성장의 기반이 되고 있으며, 아프리카에서는 현지 브랜드의 부상도 나타나고 있다.
한편 소비자 기반 축소는 업계의 가장 큰 우려 요인 중 하나다. 전 세계 럭셔리 소비자는 2022년 4억 명에서 올해 3억4000만 명으로 줄었으며, 브랜드 신규 고객 유입도 5% 감소했다. 적극적 구매층 비중도 60%에서 4045%로 낮아졌다. 소비자들은 제품 구매 횟수를 줄이고 경험·중고·합리적 가격대 브랜드 등으로 소비를 분산하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대규모 지출 고객층의 비중은 2024년까지 45%까지 증가했으나 올해는 4647% 수준에서 정체된 것으로 나타났다.
수익성 악화도 두드러진다. 인건비와 운영비 증가, 성장 둔화가 겹치며 업계 영업이익률(EBIT)은 2012년 23%에서 올해 15~16%로 내려앉아 사실상 2009년 수준으로 후퇴했다. 지난 1년간 럭셔리 산업 전체 기업가치는 약 1000억 유로 감소한 것으로 추정된다.
베인앤드컴퍼니의 페데리카 레바토(Federica Levato) 파트너는 “브랜드들이 스니커즈와 소형 가죽제품을 넘어 식음료·웰니스 영역까지 확장하면서 고객 접점을 넓히고 있다”며 “가격은 오르고 관심은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과제는 두 가지”라고 말했다. 그는 “첫째는 접근 가능한 소비층을 다시 재유입시키는 것, 둘째는 확장된 브랜드 정체성을 소비자에게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보고서는 개인 명품 시장이 2035년까지 연 46% 성장해 5250억6250억 유로 규모에 도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전체 럭셔리 소비는 같은 기간 2조2000억~2조7000억 유로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다르피지오는 “럭셔리는 지금 ‘진정성’과 ‘윤리’의 시험대에 서 있다”며 “수익과 목적, 창의성과 책임 사이의 균형을 찾는 브랜드가 새로운 경쟁력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