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3D 아나모픽 기술은 없었다, 그래도 옥외광고는 이미 3D를 구현했다.
오늘날 뉴욕 타임스스퀘어나 런던 피카딜리 서커스 등 세계 주요 도시에서는 화면 밖으로 사물이 튀어나오는 듯한 아나모픽 3D(Anamorphic 3D) DOOH가 관광객과 소비자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다. 그러나 옥외광고가 입체감과 공간을 활용하기 시작한 것은 디지털 기술이 등장하기 훨씬 이전부터다.
미국 옥외광고 기업 클리어 채널 아웃도어(Clear Channel Outdoor)가 최근 공개한 과거 캠페인 아카이브는 2000년대 초반 광고주들이 정적인 빌보드에 실제 조형물과 구조물을 결합해 ‘3차원 옥외광고’를 구현했던 사례를 보여준다.
당시에는 고해상도 LED나 실시간 3D 영상 기술이 없었기 때문에 광고 제작자들은 빌보드 자체를 하나의 입체적인 광고 무대로 활용했다. 평면 광고 위에 대형 조형물을 설치하거나 광고판 밖으로 구조물을 돌출시켜 보행자와 운전자의 시선을 끌었다. 최근 DOOH에서 자주 활용되는 ‘화면의 경계를 넘어서는 크리에이티브’를 실제 구조물로 구현했던 셈이다.

대표적인 사례는 미국 복권 브랜드 파워볼(Powerball) 캠페인이다. 광고판에는 “Don’t Belittle Powerball. It’s Always Big.”이라는 문구가 등장한다. ‘파워볼을 작게 보지 마라. 언제나 크다’는 의미로, 파워볼의 대규모 당첨금 규모를 강조한 메시지다.
광고의 핵심은 빌보드 오른쪽에 설치된 거대한 붉은색 공이다. 실제 파워볼을 연상시키는 대형 구체가 광고판을 뚫고 밖으로 튀어나온 것처럼 제작됐으며, 주변 구조물까지 부서진 듯한 모습으로 연출됐다. 광고 문구에서 강조한 ‘Big’이라는 개념을 말이 아니라 실제 크기와 공간으로 보여준 것이다.
멀리서 광고판을 바라보는 운전자나 보행자는 문구를 읽기 전에 먼저 거대한 붉은 공을 발견하게 된다. 짧은 시간 안에 메시지를 전달해야 하는 옥외광고의 특성을 고려하면 매우 직관적인 크리에이티브다.

미국 의료기업 카이저 퍼머넌트(Kaiser Permanente)의 ‘Thrive’ 캠페인도 평면 광고와 실제 공간을 결합한 대표적인 사례다. 광고판에는 사람이 비눗방울을 불고 있는 장면이 크게 배치됐으며, 광고판 상단에는 실제 비눗방울처럼 보이는 여러 개의 구형 조형물이 설치됐다.
광고 이미지 속에서 만들어진 비눗방울이 광고판 밖으로 계속 날아가는 듯한 효과를 만들어 평면 이미지와 현실 공간의 경계를 허물었다. 건강하고 활기찬 일상을 강조하는 ‘Thrive’라는 브랜드 메시지를 단순한 문구가 아니라 공간적 경험으로 전달한 것이다.

자동차 브랜드 사이언(Scion)의 2008년형 tC 광고 역시 빌보드 구조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광고에는 “THE 2008 tC WITH SUBTLE TWEAKS.”라는 문구와 함께 차량 이미지가 배치됐으며, 차량 주변에는 여러 개의 대형 화살표가 설치됐다.
특히 흰색 화살표가 광고판 밖으로 돌출되도록 제작해 자동차 디자인의 세부적인 변화에 자연스럽게 시선이 집중되도록 했다. 일반적인 자동차 광고가 사진과 설명을 통해 신차의 변화나 특징을 소개했다면, 사이언은 ‘Tweak’이라는 개념을 실제 입체 구조물로 시각화했다.
세 캠페인의 공통점은 빌보드를 단순한 사각형 광고판으로 보지 않았다는 데 있다. 파워볼은 거대한 공으로 당첨금의 규모를 표현했고, 카이저 퍼머넌트는 비눗방울을 현실 공간으로 확장해 건강한 일상의 이미지를 전달했다. 사이언은 돌출된 화살표를 이용해 자동차 디자인의 작은 변화를 오히려 크게 보여줬다.
클리어 채널 아웃도어는 이 같은 과거 사례를 소개하며 오늘날 아나모픽 3D 애니메이션 빌보드가 등장하기 이전에도 광고주들이 공간과 깊이를 활용하기 위해 다양한 실험을 시도했다고 설명했다.
현재의 아나모픽 3D DOOH 역시 기본적인 접근 방식은 크게 다르지 않다. 화면이라는 물리적 경계를 의도적으로 무너뜨리고 광고 속 사물이 실제 도시 공간으로 튀어나오는 듯한 착시를 만들어 사람들의 시선을 붙잡는다.
과거에는 이를 실제 조형물과 구조물로 구현했다면, 현재는 고해상도 LED와 3D 영상 제작 기술이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표현 기술은 달라졌지만 도시 공간과 광고 매체의 특성을 활용해 소비자의 관심을 끌어내려는 기본적인 아이디어는 동일하다.
결국 옥외광고의 경쟁력은 새로운 기술 자체보다 그 기술과 매체 공간을 어떻게 창의적으로 활용하느냐에 있다. 20여 년 전 광고판을 뚫고 나온 거대한 파워볼과 하늘로 이어지는 듯한 비눗방울, 자동차를 가리키던 입체 화살표는 오늘날 3D DOOH 크리에이티브의 원형을 보여주는 사례다.
디지털 기술은 옥외광고의 표현 영역을 크게 넓혔지만, 도시 공간 속에서 사람들의 시선을 멈추게 하고 기억에 남는 경험을 만드는 옥외광고의 본질은 이미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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